빨간색 하면 떠오르는 북극곰과 탄산음료, 파란색 하면 떠오르는 타원형과 전자제품, 초록색의 검색창 등 소비자는 특정 색채만으로도 그 기업 혹은 상품을 연상한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색채는 기업의 중요한 마케팅의 수단으로 사용되며, 기업은 자사의 고유 제품 혹은 서비스를 연상시킬 수 있는 고유의 색채를 개발하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식별력’을 가진 색채는 기업 혹은 상품을 나타내는 ‘상표’가 되기도 한다. 색채상표란 기호, 문자, 도형 또는 입체적 형상 또는 이들을 결합한 것의 각각에 색채를 결합한 것 또는 색채 자체만으로 이루어진 상표를 말한다.1 이전에는 전자의 형태만 색채상표로 인정되었지만, 2007년 초 개정된 상표법에서 후자인 ‘단일 색채만으로 구성된 상표(color per se)’에 관해서도 상표등록 적격을 인정하는 관련 법규가 마련되었다. 상품의 전부 또는 일부에 사용되는 한 가지 색채 또는 여러 색채의 조합은 상품의 시각성을 높이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함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1 디자인맵, IP용어사전(http://designmap.or.kr/dr/DrDdFrM.jsp).
처음부터 단일 색채가 상표로 인정되지 않았던 이론적 근거로는 (1) 동종업계에서 식별 가능한 색채는 극히 제한되어 있는데 이를 특정인이 선점하면 색채가 고갈되어 경쟁업자는 더 이상 색채를 갖지 못하므로 색채만의 등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색채고갈론, (2) 색채가 그 상품의 이용이나 목적에 필수적이어서 경쟁사 보다 압도적 우위를 제공할 수 있을 때에는 자유경쟁의 필요 상 등록을 부정하여야 한다는 기능성이론, (3) 색채만으로 이루어진 상표를 보호한다면 심사관 또는 법원은 각기 다른 색채를 서로 구별하여야 하는데 색채를 구별하거나 이에 대한 혼동 가능성의 판단 등은 매우 어렵고 주관적 가치판단이 될 수 있다는 색조혼동론 등이 있다.2
2 최덕규, <색채상표>, 패션채널, 01월호, 2010년, 238쪽.
그러나 우리나라보다 단일 색채상표에 대한 인식이 앞서 있던 미국에서 1995년 Qualitex사의 금녹색(gold green)이 식별력을 갖는다는 판결이 나옴으로써 단일 색채는 상표로 보호받을 수 없다는 원칙이 깨지게 되었다.3 소비자 다수는 Qualitex사의 제품을 ‘금녹색 다림질 패드(press-pad)’로 색채를 통해 인식했고, 이와 동일한 색상의 제품을 제작한 후발 경쟁업체의 제품 또한 Qualitex사의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판결은 다림질 패드에 쓰인 금녹색은 제품의 필수적 기능과 연관되어 있지 않으며, 오히려 해당 제품을 통해 이 분야에 널리 이 색채를 알리게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여 단일 색채만으로 이루어진 상표를 인정하는 첫 판례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색채가 다른 표장에 결합한 경우에 한정하여 색채상표를 인정하는 제한적인 현행 상표법의 규정 및 실무내용에 대한 법리를 검토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4
3 Qualitex Co. v. Jacobson Prods. Co., 514 U.S. 159 (1995).
4 배대헌, <단일색채의 상표등록 여부에 관한 검토 - Qualitex 사건판결을 중심으로>, 지식재산논단 제1권 제1호, 2004년, 214쪽.
_사용에 의한 식별력(secondary meaning) 취득
소리상표, 냄새상표와 같이 비전형 상표에 포함되는 색채상표는 색채 그 자체에는 본질적으로 식별력이 없다고 보여지므로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필수적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한 기업에서 어떤 색상을 먼저 선점하고 출원한다고 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널리 알려져 사용되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식별력 취득 여부는 주로 매출액, 판매량, 소비자 설문조사, 광고 횟수, 광고액, 사용기간 등을 고려하여 판단된다.
_비기능적(non-functionality)
단일 색채상표가 지정상품의 품질, 용도 등의 성질을 직접 나타내거나(상표법 제6조 제1항 제3호 및 제7호), 특정 색채가 상품의 사용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실용적 기능성이 있을 경우 그 기능에 의해 자유로운 경쟁을 해칠 수 있어 등록이 불허된다.5 미국의 Ferris Corporation 사건6에서는 ‘분홍색의 외과용 붕대’는 백인의 피부색과 비슷하므로 기능적이라고 판단하였고, Pollak Steel Co. 사건7에서는 펜스(Fence)에 반사되는 색채를 사용한 경우 그 색채는 기능적이라고 판결한 사례가 있다.
_색채 도면(drawing)
색채상표는 시각적으로 표현이 가능하므로 색채도면으로 표현되어야 하며, 상표의 특징이 되는 색채의 명칭과 색채가 상표에 쓰였는지 설명을 적어야 한다. 상표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경우, 상표심사기준에 따라 심사관은 상표에 대한 설명서에 상업적인 색채식별체계(PANTONE 등)를 참조하여 색채의 농도 표시를 추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8 미국의 경우에는 제품에 사용되는 색채 일부를 상표로서 등록받고 싶다면 색채가 사용된 정확한 형태를 점선으로 표시해야 한다. 점선이 없는 도면의 경우 특정한 색채로 이루어진 상품모양이나 포장모양을 구체적으로 나타내야 한다.9
5 개정법상 협의의 색채상표와 기능성, <성암특허사무소 블로그>, 2009/09/23 15:26, http://blog.naver.com/sungampat?Redirect=Log&logNo=20089826828 (2013/1/7-접속날짜).
6 In re Ferris Corporation, 59 USPQ2d 1587(TTAB 2000).
7 In re Pollak Steel Co., 314 F.2d 566, 136 USPQ 651(C.C.P.A. 1963).
8 김원오, <색채 자체의 상표로서의 출원 및 등록적격성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2008년, 68쪽.
9김원오, <색채 자체의 상표로서의 출원 및 등록적격성에 관한 비교법적 고찰>, 2008년, 54쪽.
구두 밑창 부분의 빨간색(lacquered red sole) 색채상표를 보유하고 있던 루부탱사는 2011년 YSL의「Cruise 2011」 컬렉션의 3개 구두모델에 대해 자사 제품과 사실상 동일한 빨간색이 사용되어 소비자를 오인시킨다며 YSL에게 색채 사용중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YSL사가 이를 거절하자 뉴욕 남부지방법원에 가처분신청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원심에서는 빨간색에 대한 독점을 부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에 루부탱은 항소를 진행했고 결과적으로 YSL은 구두 밑창뿐만 아니라 신발 전체에 빨간색을 적용한 것이므로 루부탱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았고, 구두 밑창부분에만 빨간색을 적용한 루부탱의 상표권 또한 그대로 유효한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처럼 자신만의 브랜드 색을 지키기 위한 기업들의 고군분투는 계속되고 있다. 트레이드 드레스(trade dress)를 인정하는 미국의 경우에도 단일 색채 상표가 등록된 사례보다 다양한 이유로 거절된 판례를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등록된 색채 상표를 무효화 하려는 경쟁사의 공격도 치열했다. 상표권은 영구적으로 독점이 가능한 강력한 권리인 만큼 특히나 단일 색채 상표로의 등록은 까다로운 편이다.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한 일정한 규범과 색채가 중요 마케팅 요소로서 적용되고 있는 시장 상황 반영 사이의 균형과 조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글 / 디자인맵 편집부